조선 후기 서구 문물을 개척한 조선 말 선비 이항로의 글
조선 후기 서구 문물을 개척한 조선 말 선비 이항로의 글 이제 이항로(李恒老 : 이항로 [ 李恒老 ] 이항로 영정 이미지 크게보기 1792-1868. 조선 말기의 성리학자. 이칭별칭 자 이술(而述), 호 화서(華西), 시호 문경(文敬) 유형 인물 시대 조선 출생 - 사망 1792년(정조 16) ~ 1868년(고종 5) [네이버 지식백과] 이항로 [李恒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의 이론을 예로 들어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여 그의 척사사상斥邪思想이 시대의 동향에 대하여 아무 지각도 없는 단순한 경계심이나 배타감정排他感情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고, 서구西歐의 물질문명을 성리학적性理學的인 안목으로나마 폭넓게 인식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서양인西洋人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사학邪學(천주교天主致)을 퍼뜨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동조자를 구하여 그들과 짝짜꿍(表裏相應)하여 우리나라의 실정을 탐지하며, 후에는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서 아름다운 우리 풍속을 진창 속에 쓸어 넣고 우리 재물을 약탈하여 저희들의 탐욕을 채우려는 데 있다」註 001고 하였다. 또한 「소위 외래품이란 것은 그 사목事目이 많아서 일일이 들 수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양물洋物이 가장 심하다. (중략中略) 무릇 양물洋物이 들어옴에는 그 품목이 심히 많으나 그 모두가 존나 ㅎㄷㄷㄷㄷ(奇技淫巧)인 것으로 민생일용民生日用에 무익할 뿐 아니라 아주 큰 화가 되는 것이다.(왜 니 멋대로 무익하다고 단정지어? 하여튼 중략中略) 하물며 그들의 재화財貨는 손에 의하여 생산된 것으로 일계(日計)에 넉넉한 것(有餘)한 것이요, 우리 재화財貨는 토지에서 생산된 토산물로서 생계에 부족한 것이다. 부족한 것과 넉넉(有餘)한 것을 교역한다면 우리가 어찌 곤란하지 않겠는가. 일계(日計)로서 세계(歲計)에 접한다면 그들이 어찌 넉넉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생생生生 자생自生 왕래무상往來無常하여 혹은 민간에 잡처(雜處)하여 우리 민속을 바꾸게 하고, 혹은 연해지沿海地에 출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