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거전 갤 념글) 일본제국의 근대화 비법

 고거전 갤 념글) 일본제국의 근대화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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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막부가 통치하는 에도 시대에, 일본인들은 대부분 농민이었다. 절대 다수라고 해도 될 정도로. 농민은 일년 내내 자신의 영지를 지배하는 영주를 위해 일했고 농민들이 쌀을 바치는 수량이 많을수록 부유한 번으로 여겨졌다. 석고(고쿠다카)가 높은 영주는 도쿠가와 막부에서 높은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 전통적인 봉건 사회에선 일년 내내 노역으로 고통받는 농민들과 극소수의 사무라이 통치자만 있을 뿐이었다. 이 흐름은 고도화된 질서로 규율이 잡혀있어 농민의 저항은 가혹한 형벌과 죽음으로 이어졌고, 일본의 역사가 시작된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 이후 에도 시대까지 1000년 동안 반복됐다.




시를 쓰고 서예를 배우며 높은 문화를 향유하는 공가의 무리들은 극소수였다. 이들의 수는 사무라이보다도 적었다.






그리고 1869년 도쿠가와 막부의 통치가 종언을 맞이함과 동시에 일본의 전통적인 질서와 구습은 막말 혼란 속에서 사라진다. 메이지 정부의 요직을 장악한 사츠마 번과 초슈 번의 무리들은 하급 공가 출신의 이와쿠라 토모미와 합작하여 천황을 신격화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메이지 시대의 학교와 병영에는 천황의 초상화와 일장기가 걸리기 시작했다. 에도 시대까지, 일본인들의 대다수는 자기나라가 아시아에 있는지 인도차이나에 있는지 관심이 없었다. 설령 알았더라도 의미가 없었다.




유학자가 아닌 한 "아시아"가 뭔지도 몰랐을 것이다.




에도 막부는 쇄국을 통해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고 모든 일본인의 이동은 엄격히 금지됐다. 설령 사무라이 그 이상의 지위를 가진 영주라 하더라도 다른 번으로 이동하면 탈번으로 간주되어 처벌받았다. 당연히 바다로 나가는 것도 금지됐다.






메이지 신정부는 이런 무지몽매의 백성들을 일괄적인 선동작업읗 통해 하나의 단일된 국민으로 육성했다. 1880년에서 1890년 사이에 많은 일본의 신문과 언론들은 조선을 가난하고 무지하다며 비난하고 청을 오만하다며 욕하는 것으로 여론이 형성되길 기대했다.




학교와 군대는 일본 시골 각지에서 온 뜨내기들을 모아서 이역만리의 청나라를 경멸해야 하는 대상으로 가르쳤다. 이렇게 일본인은 백성에서 국민으로 변해갔다. 1890년대 일본은 지나가는 료타로도 시국을 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근대의식이 형성된 것이다.




에도 시대까지 일본에서 중국인은 당인(唐人=당나라 사람)으로 불리었지만 불과 20년 사이에 단어는 


청인으로 바뀌고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청인을 욕하고 멸시하는 상황이 됐다. 


규슈의 남쪽 가고시마에서 태어났든 도호쿠의 센다이에서 태어났듯 일본 군대에 입대하면 모두가 같은 사상과 이념을 교육받았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전선에서 일괄적으로 청병에 맞서 겁내지 않는 보병으로 훈련됐다. 그 성과는 1894년 누구나 아는 결과로 나타났다. 일본의 근대화가 완수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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